종교 조직의 권력화

– 최근 통일교 이슈를 심리로 보면 사람이 많아질수록 종교는 본래의 의미보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앞서기 시작한다. 교리는 신앙을 위한 도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질서를 지키기 위한 규칙이 되고, 질문을 막는 장치가 된다. 이 과정에서 지도자는 단순한 운영자가 아니라 상징적 존재로 격상된다. 상징은 곧 권위가 되고, 권위는 집중된다. ​ 비판은 곧 조직 전체를 흔드는 위험한 행위로

대중적인 종교가 나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종교를 판단할 때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것 종교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그 종교는 유명해?” “신도가 많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어?” 하지만 과연 종교를 고를 때 그 기준이 가장 중요할까. 대중적이라는 건, 안전하다는 뜻일까 신도가 많다는 건 오래되었다는 건 사회에 뿌리내렸다는 건 분명 하나의 참고 요소다. 하지만 대중성은 그 종교가 **‘많은 사람에게 맞았다’**는 뜻이지

하루에 108번 고개를 숙인다는 것의 의미

108배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종교를 떠올린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을 통해 마음의 위치를 바꾸는 행위에 가깝다. 하루에 108번 고개를 숙인다는 건 스스로를 낮추기 위해서라기보다 잠시 세상을 내려다보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늘 위를 보거나, 앞을 보거나, 비교하느라 굳어 있던 시선을 의도적으로 바닥으로 돌리는 일. 그 반복 속에서 마음의 높이도 함께 내려간다.

말보다 수행이 앞섰던 향곡 스님

향곡 혜림 스님, 수행으로 한국불교의 길을 묻다 불교 정화운동의 시기,(1950년대~70년대) 한국불교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수행자의 언어로 보여준 어른이 있다. 향곡 혜림(香谷 蕙林) 스님이다. 스님은 재단법인 선학원 제11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형식이 아닌 수행 중심의 불교, 제도가 아닌 마음의 정화를 강조한 인물로 기억된다. 전통 교육 속에서 자란 소년, 출가를 결심하다 향곡스님은 1912년 경북 영일군 신광면에서 태어났다. 성은

비판과 오해 사이, 혜민 스님을 다시 묻다

무소유 =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무소유를 ‘아무것도 갖지 않는 삶’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소유의 양이 아니라 집착의 상태에 가깝다. 이게 무소유의 본래 의미다. 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바로 집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다. 혜민스님의 선택, 오해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럼에도 혜민스님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무종교가 늘어나는 사회, 믿음은 어디로 갔을까

요즘 “무종교입니다”라는 말은 특별한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기본값에 가깝다. 특히 20~30대에서는 종교가 있느냐는 질문이 취미나 MBTI만큼이나 가벼운 항목이 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무종교인은 늘어나는데, 종교 이야기는 더 자주 들린다. 이건 모순일까, 아니면 변화의 신호일까.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났다고 해서 의미·위로·질문까지 버린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말에 더 가깝다. 즉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

다스칼로스의 가르침은 서구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핵심 구조는 불교와 동양 사상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는 인간을 고정된 ‘나’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의식과 반응의 흐름으로 이해했다. 이는 불교의 무아(無我) 개념과 유사하다. ‘나’라고 믿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낸 임시적 구조라는 관점이다. 특히 다스칼로스가 강조한 ‘자기 관찰’은 불교의 사띠(sati, 알아차림) 수행과 매우

부처님 비서실장, 아난다 존자

부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 👉 그래서 흔히 **“부처님의 친구 같은 제자”**라고 불려요. 기억의 달인, ‘다문제일(多聞第一)’ 📌 그래서 붙은 별명 다문제일(多聞第一) → “가장 많이 듣고 가장 잘 기억한 제자” 불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 부처님 열반 후, **제1차 결집(불경 편찬 회의)**가 열렸는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 이 문장, 불경에서 많이 봤죠? 👉 거의 전부 아난다의 기억

김홍빈 신부 – 신앙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견디는 힘을 준다.

김홍빈 신부의 이야기는 늘 거창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바닥에서 시작된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신앙을 말한다. 그에게 신앙은 세상을 빠져나가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현실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한 태도에 가깝다. 김 신부가 강조하는 ‘땅’은 단순한 농업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에 기대 살아가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사회에서, 땅마저

천생사 회주 석불 스님

경북 구미 천생산 자락, 해발 406미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선학원 천생사는 수행과 기도가 어우러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회주 석불 스님은 오랜 수행과 실천을 바탕으로 사찰의 전통과 현대적 역할을 함께 세워 온 불교 지도자다. 1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천생사는 석불 스님이 인연으로 이곳에 머문 이후, 기도와 정진의 공간이자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열린 사찰로 변화해 왔다. 365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