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수행이 앞섰던 향곡 스님

향곡 혜림 스님, 수행으로 한국불교의 길을 묻다

불교 정화운동의 시기,(1950년대~70년대)

한국불교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수행자의 언어로 보여준 어른이 있다.

향곡 혜림(香谷 蕙林) 스님이다.

스님은 재단법인 선학원 제11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형식이 아닌 수행 중심의 불교,

제도가 아닌 마음의 정화를 강조한 인물로 기억된다.

전통 교육 속에서 자란 소년, 출가를 결심하다

향곡스님은 1912년 경북 영일군 신광면에서 태어났다.

성은 김씨, 속명은 진탁이었다.

부모의 뜻에 따라 신식 교육 대신 서당에서 한학을 익히며

어린 나이에 이미 사서삼경을 통독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스님은 출가의 뜻을 굳히고

이미 출가해 있던 형을 찾아 양산 내원사로 향한다.

그곳에는 당대의 선지식 운봉 성수 스님이 조실로 계셨다.


운봉 성수 스님과의 인연, 그리고 치열한 정진

어린 나이를 이유로 출가를 만류받았지만

스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부모의 허락까지 받아 마침내 입산이 허락되었고

이후 내원사에서 공양주 소임을 맡으며 수행에 몰두했다.

1930년, 조성월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고

법명 ‘혜림’을 얻었다.

이후 강원에서 수학하며 선정 수행을 즐겼고

1932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운봉 스님의 문하에서 약 10여 년간 시봉하며

스님은 수행자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향곡’이라는 법호, 그리고 성철 스님과의 도반 관계

1944년, 운봉 스님은 법을 부촉하며

‘향곡(香谷)’이라는 법호를 내렸다.

이 무렵 향곡스님은

평생의 도반이 되는 퇴옹 성철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두 스님은 함께 선방에서 정진하며

깨달음과 수행을 두고 서로 다른 견해를 나눴다.

  • 성철 스님: “한 번 깨치면 더 보탤 수행은 없다”
  • 향곡 스님: “깨달음 이후에도 끝없는 보임이 필요하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수행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고,

그 차이는 한국 선불교의 깊이를 더했다.


형식보다 마음을 바로 세우려 한 정화운동

정화운동 시기,

향곡스님은 제도 개혁보다 수행 풍토의 회복을 중시했다.

중앙종회의장을 맡아 불교의 본래 정신을 되찾는 데 힘썼고

묘관음사 길상선원 설립, 흥륜사 중창,

불국사 주지 소임 등을 통해 불교 중흥에 헌신했다.

말년에는 묘관음사에 주석하며

후학을 제접하는 데 전념했다.

마지막 가르침, 그리고 남겨진 흔적

1978년 12월 18일,

향곡스님은 법랍 50년, 세수 67세로 입적했다.

열반을 앞두고 남긴 임종게는

수행자의 자유로운 경지를 잘 보여준다.

목인은 잿마루에서 옥피리를 불고

석녀는 시냇가에서 춤을 춘다

스님이 전법의 증표로 간직하던 백불(白拂)은

오늘날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그 수행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향곡 혜림 스님은

말로 앞서는 지도자가 아니라

몸으로 수행을 증명한 선승이었다.

형식이 불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바로 설 때

불교도 바로 선다는 믿음.

그 신념은

지금도 한국불교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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