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는 왜 늘 오해받았을까

—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과 낙인의 역사

**Mary Magdalene(막달라 마리아)**는 성경 속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왜곡된 존재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막연히 ‘죄 많은 여자’ 혹은 ‘회개한 창녀’로 기억하지만, 정작 성경 본문 어디에도 그런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오해는 이야기의 내용보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덧씌워진 결과에 가깝다.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주변을 떠돌던 인물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 있던 사람이다. 십자가 처형을 지켜봤고, 부활을 처음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역할은 오랫동안 축소되거나 다른 여성 인물과 뒤섞여 해석되어 왔다. 이는 신앙의 문제라기보다, 여성의 목소기를 불편해하던 시대의 관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막달라 마리아가 오해받은 이유는 그녀의 행동보다 ‘위치’에 있다. 중심에 가까웠지만 권한은 없었고, 중요한 장면에 등장했지만 해석의 주도권은 남성 중심 공동체에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증인이 아닌 ‘설명 대상’이 되었고, 인물은 점차 도덕적 상징으로 단순화되었다. 낙인은 사실을 대체했고, 이야기는 편리한 방향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지점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와도 겹쳐진다. 사람은 종종 한 번 붙은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렵고, 설명보다 소문이 더 오래 남는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어떻게 불려왔는지가 정체성을 결정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잘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해받은 것이 아니라, 설명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받은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를 다시 읽는 일은 신앙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시선의 역사를 되짚는 일에 가깝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인도, 타락한 상징도 아닌 한 사람의 증인이었다. 그녀가 늘 오해받아온 이유는, 진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진실을 말할 위치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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