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는 왜 끝까지 불편해했을까
— 믿음은 있었지만,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 사람

**Jonah(요나)**는 성경 속에서 가장 솔직하게 불편함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신을 모른 사람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문제는 믿음의 유무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었다. 요나는 사명을 몰라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쳤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다. 니느웨는 원수의 도시였고, 멸망해도 싸다고 여겨지던 곳이었다. 요나는 정의가 실현되길 바랐고, 용서는 그 정의를 흐트러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도망을 택한다. 이는 불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 감정과 신의 자비가 충돌한 순간에 가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요나는 사명을 수행한 뒤에도 불편해한다. 도시가 회개하고 멸망을 면하자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기준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요나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기준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으로 보인다. 믿음은 있었지만, 그 믿음이 향하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요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종종 옳은 일을 알면서도 하기 싫어한다.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못 하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감정은 따라가지 않는다. 요나는 그런 상태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불편해하고, 끝까지 투덜거린다. 성경은 그 불편함을 고치려 들기보다,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래서 요나는 실패한 예언자라기보다, 믿음과 감정이 어긋난 인간의 표본에 가깝다. 그의 이야기는 묻는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준비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요나가 끝까지 불편해했던 이유는,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의보다 더 큰 자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