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도 산업화도 끝났는데, 우리는 왜 아직 싸우고 있을까
새마을운동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한때 이 나라는
배가 고팠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에 흙을 묻히고,
길을 닦고, 공장을 세웠다.
그 시절의 구호는 분명했다.
“잘 살아보세.”
그 말에는
이념도, 철학도 많지 않았다.
그저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배는 어느 정도 찼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자주 허기진다.
사람들은 늘 화가 나 있고,
서로를 쉽게 미워하며,
누군가의 성공보다
누군가의 실패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
민주화냐, 산업화냐.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공로를 두고
현재를 갈라 먹고 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가 새마을운동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새마음운동’의 시대가 아닐까.
요즘 사람들이
조용히 명상 앱을 켜고,
절에 가서 앉아 있고,
참선과 마음공부에 끌리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내 마음 안의 분노와 불안을
조금 내려놓고 싶어서.
이건 도피가 아니다.
너무 오래 싸워온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방식이다.
앞으로 필요한 지도자는
더 크게 소리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낮은 온도로 식혀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기는 정치보다,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정치.
나쁨을 조금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라는 가치를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새로운 시대의 얼굴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은 쉽지 않다.
지금의 정치 구조는
사람을 모으기보다
편을 나누는 데 익숙하다.
현재의 대통령, 이재명 역시
강한 추진력만큼이나
강한 반작용을 함께 안고 있다.
그래서 ‘모으는 상징’이 되기엔
아직은 거친 바람이 많다.
하지만 시대는
늘 사람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인다.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어떻게 더 많이 가질까?”가 아니라
“어떻게 덜 미워하며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답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
아마 그 사람이
다음 시대의 지도자일 것이다.

한 줄 여운
새마을운동이 마을을 살렸다면,
새마음운동은
우리를 서로에게서 살려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