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감사하지 않으면 이상해질까?
요즘 사회를 보다 보면
이상한 피로가 느껴질 때가 있다.
감정을 느끼는 건 자유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어떤 감정은 허용되고
어떤 감정은 바로 문제 취급을 받는다.
- 감사해야 한다
- 이해해야 한다
- 공존해야 한다
이 말들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이 말들이
하나의 정답처럼 굳어질 때다.
AI 활용
감사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고
미워하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힘들다고 말하면
곧바로 이런 말이 따라온다.
“그래도 감사해야지”
“그 정도면 이해해줘야지”
이 순간부터
감정은 선택지가 아니라
검증 대상이 된다.
- 감사하지 않으면 부족한 사람
- 이해하지 못하면 미성숙한 사람
- 미워하면 문제 있는 사람
감정은 원래 복합적인데,
사회는 그걸
한 방향으로만 정리하려 한다.

감정은 복잡한데, 가치는 단순해졌다
사람의 감정은 원래 그렇다.
- 고마우면서도 서운할 수 있고
- 이해하면서도 화날 수 있고
-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 있다
이게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런데 요즘은
이 복합성을 견디지 못하고
한 가지 감정만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좋게 생각해”
“마음 넓게 가져”
그 말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숨기게 된다.
가치가 ‘도덕 기준’이 되는 순간
감사, 이해, 공존 같은 가치는
원래 선택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종종
도덕 시험지처럼 쓰인다.
- 이 상황에서도 이해 못 해?
- 그걸로 아직도 화나 있어?
가치는 사람을 돕기보다
사람을 분류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로운 감정은
“문제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기술 시대일수록, 단순한 감정을 좋아한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세상은 더 복잡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에 대한 기준은 더 단순해졌다.
기술은 분류를 좋아한다.
- 맞다 / 틀리다
- 옳다 / 그르다
- 긍정 / 부정
이 논리가
사람의 마음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애매한 감정,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모순된 감정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이 힘든 이유는
감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낀 감정을 그대로 두지 못해서다.
느끼자마자
정리해야 하고,
해석해야 하고,
올바르게 바꿔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이건 무감각이 아니라
과잉 해석에 대한 방어다.
마무리하며
가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지,
사람을 눌러야 하는 기준은 아니다.
감정은
교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재해도 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고,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있어도 괜찮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그렇게
모순적인 채로 살아간다.